다녀왔어요

(경상) 주왕산행

풍요한 2010. 10. 18. 13:13

1. 일   시 : 2010. 10. 17(일)

2. 코   스 : 절골탐방지원센터 - 대문다리 - 가메봉(882m) - 후리메기삼거리 - 제2폭포 - 제1푹포 - 학소대 - 시루봉 - 주왕암/주왕굴 - 대전사 - 상의탐방지원센터

3. 누구랑 : 나홀로 (털보산악회 따라서)

 

 

 태백산맥의 남단, 경북 청송에 위치하는 주왕산(周王山)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에 하나다.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 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하였다.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고 칭하고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 까지 쫓기어 왔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자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 5형제를 보내 주왕 일파를 섬멸하니 이때부터 주왕산이라 불렀다. 이렇듯 주왕산은 곳곳에 전설의 산이며 주왕산 11경으로 기암, 자하성, 백련암, 주왕굴,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연화굴, 향로봉, 복암폭포, 좌암을 꼽는다.

 

 서울 강북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였는데 절골에 도착하니 11:20. 멀긴 멉니다.

절골 매표소로 가는길에 있는 사과밭.  청송 사과 유명하지요.

 절골탐방지원센터(11:29)

  절골은 과거 이 지역에 절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랍니다.

 절골 계곡의 풍경

 

 

 암벽 밑에 커다란 벌집이 하나 매달려 있네요.

 아직 단풍이 햇빛 좋은 곳에만 사알짝 들어가고 있습니다. 2주 정도는 더 지나야 제대로 단풍을 볼 듯 싶습니다.

  절골 다리

 

 

 

 

 대문다리(12:20). 대문처럼 생긴 나무다리가 서 있었다고 하여 대문다리라고 부른답니다.

한참 땀흘리며 올라가는데 조그마한 비암이 한마리 쓰~윽... 지나가더군요.

 

 

 서어나무 군락지 

 

 

 가메봉 삼거리.

가메봉 정상(13:30). 정상에 표시석이 없어 좀 서운했습니다.주왕산은 높이로 따지면 국립공원 북쪽 경계에 위치한 태행산(933.1m)이 가장 높지만 대전사 뒤 720.6m봉을 주봉으로 삼으며, 가메봉(·일명 석름봉)은 882.7m

 가메봉 정상 풍경입니다. 동쪽은 절벽인데 정상 공간이 그리 넓지 않고 산님들로 북적 북적. 제대로 단풍철 되면 서 있을 자리 없을 듯...

 

가메봉 정상에서의 조망. 여기서의 조망은 주왕산이 암산이라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겠더군요.

 

 

 

 

 

 정상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분과 막걸이 한잔 하면서 30분정도 쉬고는 이제 후리메기삼거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14:00)

 

  

 

 등산로는 부드러운 흙길의 연속 입니다. 암산이라지만 쇠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고 내리는 길은 전혀 없더군요.

 

후리메기 삼거리(14:50). '후리메기'라는 지명은 가메봉이나 칼등고개를 향해 후려치기 시작하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랍니다.

 

   

 

  

 

 후리메기 입구(15:06).  3폭포와 2폭포 중간입니다.  시간이 촉박하여 아쉽게도 3폭포는 포기하고 2폭포를 보기 위해 내려갑니다.

 

 

 

3, 2, 1폭포가 같은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따로 위치하고 있군요. 2폭포로 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1폭포로 가야 합니다.

 

 2폭포 가는 길

 

제 2 폭포(15:13). 수량이 적어 장관이라고 말하기에는...

 

  1폭포 바로 위에 있는 선녀탕과 구룡소

 

  

 

 선녀탕 .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신선대로 간다고 한다.  산 아랫마을 상의리에 가뭄이 심할 때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면 3일 이내에 비가 왔다고 한다

 

  선녀탕 밑으로 떨어지는 제 1폭포(일명 선녀폭포)

 

   

 

       

 

  협곡을 빠져나가면 학소대와 시루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1폭포 직전 휴게소 뒤편에 솟아 오른 기암절벽으로 청학과 백학이 떼지어 살았다는 곳으로, 해방 전 정상 부근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았데, 어느 날 포수가 백학을 잡아버리자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합니다.

 

 

 

 

 옛날 학소대 밑에는 암자가 있었다 전한다암자에서 머물던 고승이 잠을 자다 꿈속에서 도사로부터 빨리 피하라는 명을 받고 절을 급히 뛰쳐나오자마자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절이 바위에 깔려 없어졌다고 한다

. 학소대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 듯 바르게 솟아 있어 병풍바위라 부른다. 주왕산은 온통 병풍바위^^

 

 

시루봉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암벽 

 

골바람은 어디서 오나? 바로 요런데서^^

 

망월대에서 인증샷 한장. 여기에서야 왜 주왕산을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왜 남한의 3대 암산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망월대는 주왕암 협곡에서는 달을 바라볼 수 없어 대전도군(주왕의 아들)과 백련낭자(주왕의 딸)가 이 망월대 위에서 달을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망대로 변했습니다. 

 

 

 망월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망월대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병풍바위

 

망월대에서 바라본 병풍바위와 급수대.

기암절벽인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약 50m 떨어져 있는 높이 30m의 수직암벽이다.옛날 주왕의 군사들이 암벽 꼭대기에 급수기설치해 놓고 계곡의 물을 길어 올렸다 하여 급수대 라는 이름이 전해 온다또한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여 온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단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주왕암 앞에 방향표시판

 

주왕암 가학루 앞에 있는 주왕암, 주왕굴 설명판

 

 

 

주왕암 현관인 가학루(15:55)

 

 가학루를 통과하니 주왕암. 그리고 주왕암에서 주왕굴로 가는 협곡이 나옵니다.

 

주왕암(周王庵). 비구니 승방.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두 차례의 화재로 불타 버리고 지금의 건물은 약 300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 전해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산에 주방사가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주왕암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학루(駕鶴樓), 나한전(癩漢殿), 신령각, 산신각 등이 관음봉을 배경으로 기와에 청태를 인 채 고색창연하게 앉아 있다. 신령각 옆으로 해서 오른쪽의 가파른 협곡을 올라가면 능선을 거쳐 주왕산 정상에 오른다.

 

 나한전

 

 주왕암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관음봉(?)

 

 주왕암을 지나 주왕굴로 가는 협곡

주왕굴(周王窟) . 주왕암에서 협곡을 지나 철제계단( 100m 거리)을 오르면 30여 길 높이의 절벽에 바위굴과 굴 왼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인다. (오늘 물줄기도 폭포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가물 때는 건폭). 주왕이 이곳에서 숨어 살다가 흐르는 물에 세수하러 나왔을 때 마() 장군의 화살과 철퇴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굴이다. 폭포가 굴 입구를 가리고 있어 굴안에 숨어 있는 주왕을 찾을 길 없었는데, 폭포의 뒤를 의심한 마장군이 신통력을 부려 물줄기를 왼쪽으로 돌리고 주왕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주왕굴 안에 놓인 제단과 산신상

 

 

    

 

자하교에서 바라본 주방계곡

 

 자하교에서 바라본 연화봉

 

 

 

 

자하성(紫霞城:일명 주방산성)의 잔해

 

 

 

 자하성 설명문 옆에 있는 괴목

 

 주왕산 수달럐(

산철쭉)의 전설

 기암교

 

주왕산 입구에 위치한 대전사는 뒤에 솟아 있는 山 형상의 기암과 어울려 멋진 절경을 이루는 사찰이다. 고려 태조 2(919)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방사(周房寺)로 나와 있는 대전사의 당우들은 거의 모두 불타 버리고 현재 보광전과 명부전만이 남아 있다. 보광전 앞에 2기의 석탑이 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모아다가 엉성하게 조립해 놓은 것이지만, 불상들의 부조(浮彫)가 섬세하여 관심을 끈다

대전사(大典寺)에서 바라본 기암(旗岩)

 

 

 대전사 보광전. .

 

기암(旗岩).

주방천 입구에 솟아 있는 주왕산의 수문장이며 얼굴 격인 높이 45m의 큰 암봉이다. 수호신인 양 골 입구를 지키고 선 기암이 깃발을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깃발 기자를 쓴 바위로 불리는 것은 주왕(周王)의 전설에서 비롯된다. 마 장군이 이끄는 신라의 토벌대에 쫓긴 주왕이 군사가 많은 것처럼 속이기 위해 암봉에 볏짚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했으나 화살이 튕겨 나오는 것을 보고 거짓임을 눈치챈 마 장군의 토벌대가 결국 주왕을 누른 뒤 이 봉 꼭대기에 대장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깃발바위, 즉 기암봉이라고 한다. 마치 게양대와도 같고, ''의 상형문자 같기도 하다. 자연의 솜씨로 세운 비석 같은 암봉 정상에는 10여평의 풀밭이 있다. 기암 절벽 중심부의 움푹 파인 것은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바위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기암 정상은 전망대 같은 곳이다. 외주왕 일원의 기암절벽과 암봉들뿐 아니라 청송, 영덕 일원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 기암 오르기 : 대전사 뒤 상가단지를 지나 다리를 건넌 다음 100m쯤 더 가면 계곡가에 둥그스름한 바위가 보인다.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이 지점에서 탐방로 왼쪽의 너덜길을 따라 오르면 기암 뒤편의 안부에 이른다. 안부에서 기암 정상까지는 가파른 절벽 구간. 턱이 많이 져 있기는 하지만 워낙 급한 급경사이므로, 로프로 확보하면서 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기암 정상에 올랐다 다시 탐방로로 내려서는 데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대전사에서 바라본 장군봉

 

장군봉(685m)

신라 토벌군에 쫓긴 주왕은 자신의 군사력을 속이기 위해 기암에 이엉을 씌워 군량미처럼 보이게 했지만 신라의 마일성장군은 기암 맞은편에 있는 바로 이 장군봉에 올라 화살을 쏘아 꽂았으나 화살이 튕겨져 나오자 곧 바위임을 알아 차리고 공격하여 주왕을 격파하였다고 한다

 

 

하산 하였습니다. 대전사 앞 상가지역(16:28)  

 

주차장 가는 길에 아쉬워 뒤돌아 본 주왕산.   다음에 또 다시 찾아 볼 기회가 있겠지요

 

오늘 산행코스입니다. 약 13km, 5시간 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제 걸음으로 사진 찍으면서 돌려면 6시간 이상 잡아 주어야 할 코스인 것 같은데 서울 올라 갈 시간이 촉박하여 너무 서둘렀더니 제대로 보고 음미하지를 못한 느낌입니다. 산정상이나 능선에서 보는 풍광보다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km 구간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또다른 주왕산 산행기를 보실려면

https://blog.naver.com/vnddygkssk/22236792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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