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4
원림에는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이 있는데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의 차이는 사전에서는 둘을 혼용해서 쓰고 있지만 담장이 있으면 원림(園林)으로 담장이 없으면 원림(苑林)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명옥헌 원림(苑林)을 제외하고 모두 원림(園林)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원림이라 이름 붙은 것은 담양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담양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장흥 용호정원림( 龍湖亭園林)과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 보길도 윤선도원림( 尹善道園林), 화순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 순천 초연정원림(超然亭園林), 담양 소쇄원(瀟灑園), 예천 초간정원림(草澗亭園林), 장성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등이 있으며, 명옥헌 원림(苑林)을 제외하고 모두 원림(園林)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안쪽에 위치한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넷째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오이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옥헌은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하는 기록이 정철의 넷째 아들 정흥명이 지은「명옥헌기鳴玉軒記」에 전하고 있으며, 계류가 바위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명옥헌鳴玉軒계축癸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유비가 제갈공명의 초가를 세 번이나 찾았듯이 인조가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 할 사람을 찾던 중 만난 선비가 오희도였으며, 인조가 오희도를 세 번 찾아 왔다는 뜻을 의미하는 글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로 한가운데 방을 두고 ‘口’자형으로 마루를 두른 형태로 호남 지방에서 주로 지어진 전통정자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명옥헌은 이와 같이 은일자의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주위의 산수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까 싶어 200m 떨어진 후산리 은행나무 먼저 보고 다시 이리로 와서 명옥헌으로 가기로 합니다.
후산리 은행나무. 근데 설명문에... 은행나무가 말 묶어놓은게 뭔 애기거리가 되는지... 빙그레 웃고 왔습니다
이제 명옥헌으로
명옥헌 원림입니다
<누정(누각과 정자)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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