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어요

(서울) 인왕산/북악산 서울성곽

풍요한 2013. 12. 22. 20:17

1. 일 시 : 2013. 12. 21 (토)

2. 산 행 지 : 인왕산/북악산

3. 산 행코스 : 지하철3호선 독립문역 1번 출구-인왕산-청운공원-윤동주시인의 언덕-창의문(북소문) -북악산-숙정문(북대문)-와룡공원-성북동

4. 누구 랑 : 초딩친구 넷이서

 

인왕산은 높이 338.2m이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인왕산은 서울 내사산(內四山)의 서쪽 호랑이산에 해당된다.

경복궁의 주산 북악이 뾰족하고, 그 안산(案山)인 남산은 능선이 매우 부드럽고, 좌청룡인 동쪽의 낙산은 밋밋하고 얕은 지세인데 비해, 우백호인 서쪽의 인왕산은 높고

우람하다. 인왕산의 주봉은 둥글넓적하면서도 남산같이 부드럽거나 단조롭지 않다. 또한 뾰족한 북악처럼 유달리 뛰어나지는 않으나 늠름한 남성적인 산세이다

 

인왕산은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지면서 주산인 북악의 서쪽에 있어 우백호에 해당함으로써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따라서 경복궁을 짓고 도성을 수축할 당시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서쪽 성곽이 축조되었다. 그런데 한양 정도 당시 북악 주산론에 대응하여 인왕산 주산론이 있어 필운대 일대가 궁터로 주목되었다.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태조께서 임금이 된 뒤 (중략) 도읍을 어디에 정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무학이 점을 쳐서 한양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남산으로 좌청룡, 우백호를 삼으라 하였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이르기를 옛적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으로 향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무학은 '지금 내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한편 『한경지략』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
무학이 200년 뒤라 한 것은 곧 임진년(1592)을 가리킨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무너지고 깨지고 불탔으니 참으로 용케 맞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왕산 주산론은 『태조실록』에는 보이지 않아 그 신빙성에는 문제가 있으나, 인왕산 서편 선바위 전설과 더불어 국초에 불교 세력과 성리학 세력간의 주도권 다툼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도읍을 건설할 때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제도에 따라 인왕산 기슭 서부 인달방(仁達坊)에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사직단을 건설하니 나라의 상징이 인왕산의 품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세종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은 인왕산 동북 기슭에 무계정사를 마련하여 풍류를 즐기며 조정의 일을 살피기도 하였다.

 

백악산은 한양의 북현무에 해당하는 북쪽 주산으로서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사상과 지형적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과 문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자연유산이다. 서울이라는 고도의 체계적인 도성 조형원리, 풍수로 상징되는 사상적 체계를 구체화한 역사적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궁인 경복궁의 후원으로서 소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시대 경관 조성의 원리를 간직하고 있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이다.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 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다.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다. 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仁王山)·낙산(駱山)·남산(南山)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계곡이 있다. 북악산은 예전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찾아 탁족회(濯足會)를 자주 열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후 소나무가 벌채로 사라지고 현재는 참나무류가 많다. 북악산 산정을 내려와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공원이 있다.

 

 

인왕산 인왕사

 

인왕사 대웅전

 

선바위

 

 

 

 

 

 

 

 

 

 

 

함께 한 친구들이랑 인왕산 정상에서

 

 

인왕산 하산했습니다. 바로 청운공원이 이어집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내려오면 인왕산 자락길이 끝나고 부암동 입니다.

 

 

 

여기 만두국이 유명하다하여 여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북악산을 오르기로 합니다. 손님이 많아서 제법 기다렸다 먹었습니다.

 

창의문 지나

다시 성곽따라 게단위 북악산으로 오릅니다.

 

 

북악산은 반드시 신분증 지참하셔야 하고 동계철에는 15:00 이전에 입장하셔야 허가 내줍니다.

 

 

 

 

 

자북정도

 

 

 

 

백악산 정상

 

 

1.21사태 총맞은 소나무

청운대

 

 

 

 

숙정문

말바위 안내소. 15:00 넘으면 성곽 안쪽으로는 못들어가나 봅니다.

 

 

 

 

 

 

 

 

 

 

 

 

여기를 나오면 이제 와룡공원입니다.

 

와룡공원 지나 성북동으로 하산 완료하였습니다.

 

 

<서울성곽 안내지도>



또다른 인왕산 이야기를 보실려면  http://blog.daum.net/nannadaero/1149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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