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6(수)
동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자 팔공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였으며, 당시의 이름은 유가사였다. 그 후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
동화사는 비로암, 부도암, 내원암, 양진암, 염불암, 약수암 등 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보물 6점, 대구광역시 지정문화재 7점을 보유하고 있다. 1992년에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하여 많은 건물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동화사는 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산이 사찰영역을 비교적 높게 감싸고 있어 포근하고 안온적인 형세를 이뤄 흔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鳳凰抱卵形]으로 비유된다. 이에 맞춰 동화사는 일주문에 해당되는 문을 봉황문(鳳凰門)이라 하였고, 대웅전으로 진입하는 누각의 이름을 봉황이 깃드는 우각이란 뜻의 봉서루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봉서루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는 봉황알을 상징하는 둥근 알 3개를 올려두었으며, 또한 인악대사비에는 일반적인 거북모양이 아닌 봉황모양을 취하였다
동화사에서 맨 먼저 만나는 건물은 누각 봉서루이다. 봉서루는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봉황을 상징하는 누각으로, 오동 꽃이라는 동화사의 절 이름과 짝을 이루고 있다. 봉서루는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널찍한 자연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것이 봉황의 꼬리이며 그 위의 둥근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한다.
봉서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동화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의 건물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다포형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조선 영조 때 지어졌다.
뒤틀린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해 자연미를 살렸으며, 내부의 불단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고개를 숙여 글을 읽는 듯한 이 불상들은 조선시대 선비를 떠올리게 하며 진경산수화풍의 탱화, 천장을 장식하여 극락조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봉서루
산신각
칠성각
대웅전
대웅전 후면
설법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옛날 옛날에...>
신라 41대 헌덕왕(憲德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심지는 15세에 출가하여 중악(中岳-팔공산)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때 속리산 길상사(吉祥寺)에서 영심(永深)이 그의 스승 진표율사(眞表律師)로부터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해 받고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심지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길상사로 향했다. 그러나 길상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법회가 시작되어 당(堂)에 올라 참례(懺禮)할 수 없게 되자 심지스님은 마당에 엎드려 참회하고 예배드렸다.
그러던 법회 7일째 되는 날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10자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신기하게 여겨 당으로 안내하였다. 그러나 그는 병을 핑계로 이를 사양하고 마당에 물러앉아 법당을 향해 간곡히 예배하여 이마와 팔뚝에서는 피가 흘렀으며, 지장보살이 매일같이 찾아와 위로하였다.
법회가 끝나고 다시 팔공산으로 돌아가던 스님은 옷섶사이에 두개의 간자(簡子)가 끼여 있음을 발견하고 속리산으로 되돌아가 영심대사에게 돌려주었다. 대사는 괴이 여기며 간자가 보관되어 있는 함을 살펴보니 함에 있어야할 간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사는 간자를 받아들고 겹겹이 싸서 다시 잘 감추었다. 그런데 심지스님이 다시 팔공산으로 돌아가는데 간자가 또 옷섶에 간자가 끼여 있어, 다시 영심에게 돌아가 돌려주게 되었다. 그러자 영심대사는 “부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그 뜻을 받들라.”하며 간자를 주었다.
심지는 간자를 소중히 머리에 이고 팔공산으로 돌아오니 산신(山神)이 선자(仙子) 2분을 데리고 영접하였다. 스님은 그들에게 계(戒)를 주고 말하기를, “이제 땅을 가려 간자를 모시려 하노라. 이는 나 혼자 정할 일이 아니니,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가 간자를 던져 자리를 점치도록 하자.”고 하였다. 산신과 함께 산에 오른 심지스님은 서쪽을 향해 간자를 던지자 간자는 참당(懺堂) 곧 지금의 금당암(金堂庵) 뒤 우물에 떨어졌고, 샘 주위에는 오동나무꽃이 눈 속에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심지스님은 그곳에 절을 짓고, 겨울철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였다고 하여 ‘동화사(桐華寺)’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 뒤 심지스님은 동화사를 중심으로 팔공산에 여러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진표(眞表)-영심(永深)-심지(心地)로 이어진 우리나라 법상종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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