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어요

(경상) 가야산_해인사

풍요한 2012. 11. 27. 22:16

1. 일 시 : 2012. 11. 24 (토)

2. 산 행 지 : 가야산 국립공원

3. 산행코스 : 백운동매표소 - 만물상능선- 상아덤(서장대) - 서성재 - 칠불봉(1433m) - 상왕봉(1430m) - 토신골 - 용탑선원 - 해인사 - 치인주차장

4. 누 구 랑 : 회사동료랑 둘이서 (산수산악회)

 

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 현재 절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이 있다.

 

 ‘해인’이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는데, 해인삼매는 우리 마음의 번뇌 망상이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선원, 강원, 율원이 함께 하는 최초의 총림이다.

옛날 가야산에는 자식 없이 외로이 살고 있던 노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집으로 들어와 정성을 다해 키웠더니, 3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원래 용왕의 딸인데 죄를 지어 인간세상으로 쫓겨나 3년 동안 개 노릇을 하라는 벌을 받았는데, 이제 3년이 지나 다시 용궁으로 돌아가니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저의 수양부모님이 돼 주시면 며칠 후 사자를 보내드릴 테니 사자를 따라 용궁으로 오세요. 그리고 용왕님이 무슨 보물을 갖고 싶냐고 물으면 ‘해인’이라는 도장을 달라고 하세요” 하고는 사라졌다. 며칠 후 용궁에서 온 사자를 따라간 노부부는 용왕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용왕이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자, 부부는 해인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용왕은 “이것은 귀한 물건이니 절을 지어 보관하면 그 절은 번성할 것이오”라고 말하며 해인을 건네주었다.
노부부가 가야산에 돌아오니 애장왕이 가야산에 절을 짓고 있어 왕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하고 해인을 내놓았다. 애장왕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해인을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해인사’라 지었다. 그때부터 해인사에는 숨겨진 해인을 얻으면 신통력을 부릴 수 있고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해인사 외나무다리

 

 

 

범종루

구광루

 

대적광전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전 상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Vairocana)에서 온 말로서영원한 법곧 진리를 상징한다
.

안평대군의 글씨.

정중삼층석탑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경내.

 

 

법보단과 대비로전

서쪽 현판 법보단(해강 김규진의 글씨)

동쪽 현판 금강계단(해강 김규진의 글씨)

법보단 옆에 위치한 대비로전

 

 

 

 

독성각

학사대

 

 

 

 

 

 

고사목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원경왕사비. 고려시대의 고승 원경왕사(1045~1114)를 기리고자 인종3년(1125)에 세운 비다.

 

 

길상탑

 

 

해인사 碑林  

 

선의 공간. 성철스님 사리탑

 

행적비와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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